안녕하세요! 부산의 숨은 명소와 그 속에 담긴 흥미로운 이야기를 전해드리는 하시파파입니다.
부산 기장 앞바다를 떠올리면 으레 탁 트인 수평선을 배경으로 깎아지른 절벽 위에 세워진 해동용궁사의 장엄한 풍경을 먼저 떠올리실 겁니다. 사철 내내 수많은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기장의 랜드마크죠. 하지만 용궁사 남쪽과 북쪽 해안을 따라 조금만 시선을 돌리면, 예로부터 그 경치가 너무나 빼어나 수많은 전설과 문객들의 발자취를 품어온 거대한 암벽 지대, ‘시랑대(侍郞臺)’와 ‘오랑대(五郞臺)’가 숨어 있습니다.
단순한 자연경관을 넘어 바다의 신령스러운 전설과 조선 시대 사대부의 풍류가 켜켜이 쌓인 이 두 명소는, 놀랍게도 오늘날 부산을 대표하는 체류형 해양 관광 단지이자 동해선 전철역 이름인 ‘오시리아(OSIRIA)’의 어원이 되었습니다. 오늘은 기장의 숨겨진 보석, 시랑대와 오랑대에 얽힌 신비로운 이야기부터 오시리아라는 세련된 네이밍의 탄생 비하인드까지 샅샅이 파헤쳐 드리겠습니다.
🐉 1장. 원앙대 전설: 용녀(龍女)와 인간 청년의 비극적 사랑, 시랑대
해동용궁사 바로 남쪽 해안에 위치한 시랑대의 본래 이름은 ‘원앙대(鴛鴦臺)’였습니다. 아득한 옛날, 이 웅장한 바위 아래 깊고 푸른 기장 바닷속에는 찬란한 용궁이 자리 잡고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바다를 다스리는 용왕에게는 유독 영민하고 눈부시게 아름다운 딸이 있었는데, 공주는 늘 수면 위 지상의 세계를 궁금해하며 동경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바깥세상을 구경하던 공주는 바위 위에서 처연하게 피리를 불며 사색에 잠긴 한 지상의 청년을 보게 됩니다. 맑은 영혼과 구슬픈 피리 소리에 단숨에 매료된 용녀는 아름다운 인간의 모습으로 변해 뭍으로 올라왔고, 두 사람은 훗날 시랑대가 되는 원앙대의 으슥한 바위틈에서 남몰래 깊은 사랑을 나누었습니다.
하지만 신과 인간의 금지된 사랑은 결코 오래갈 수 없었습니다. 이 비밀을 알게 된 용왕은 크게 분노하며 천지를 뒤흔들었고, 용녀에게 즉각 바다로 돌아올 것을 엄명했습니다. 만약 거역할 시 청년의 목숨을 앗아가겠다는 끔찍한 경고와 함께 말이죠. 결국 사랑하는 이를 지키기 위해 용녀는 눈물을 머금고 영원한 이별을 택하며 거친 파도 속으로 몸을 던졌습니다.
지금도 시랑대 바위 곳곳에는 움푹 파인 기묘한 자국들이 남아 있는데, 기장 지역 민간에서는 이를 용녀가 바다로 뛰어들 때 남긴 간절한 발자국과 치맛자락의 비늘 자국이라 부르며 오랜 세월 신성하게 여겨왔습니다.
📜 2장. 전설이 역사가 되다: 권적(權適) 현감의 묵향
애틋하고 로맨틱한 사연을 품은 원앙대는 조선 영조 9년(1733년)에 이르러 역사적 전환점을 맞이합니다. 당시 기장 현감으로 부임한 권적(權適)이라는 실존 인물 덕분입니다. 그의 이전 관직이 이조시랑(현재의 인사혁신처 차관급에 해당)이었기에, 지역 사람들은 그를 존중하는 의미로 ‘권 시랑’이라 불렀습니다.
평소 문필에 능하고 풍류를 즐길 줄 알았던 권적 현감은 관내를 순시하던 중 원앙대의 압도적인 절경에 깊은 감명을 받게 됩니다. 그는 이 벅찬 감동을 기록으로 남기고자 거대한 바위 벽면에 당당하고 힘찬 필치로 ‘시랑대(侍郞臺)’라는 세 글자를 깊게 새겨 넣었습니다.
이후 그가 이곳의 아름다움을 찬양하는 한시를 남기고, 수많은 사대부가 이곳을 찾아 풍류를 즐기면서 일대의 명칭은 자연스럽게 그의 관직명을 딴 ‘시랑대’로 굳어지게 되었습니다. 원초적이고 토속적인 해양 신앙 위에 조선 시대 엘리트 관료의 유교적 문화가 하나의 장소에 절묘하게 융합된, 한국 해양 문화 콘텐츠의 독특한 사례입니다.

시랑대(侍郞臺) 음각 바위

오랑대 일출
🌅 3장. 기장 제일의 일출 명소, 다섯 벗의 호연지기가 머문 ‘오랑대’
시랑대에서 해안을 따라 북쪽으로 조금만 향하면, 거친 파도가 뾰족한 검은 갯바위에 무섭게 부서지며 웅장한 장관을 연출하는 ‘오랑대’가 나타납니다. 전국구 일출 명소이자 사진작가들의 성지로 유명한 이곳 끄머리 바위에는 바다의 평안을 기원하는 작은 암자인 ‘용왕단’이 위태롭지만 당당하게 자리 잡고 있어 영험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오랑대’라는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흥미로운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가장 널리 알려진 설은 옛날 기장으로 유배를 오거나 낙향한 다섯 명의 선비(혹은 오랜 벗들)가 이 거친 바위 절벽에 모여 술을 마시며 시를 읊고 풍류를 즐겼다 하여 ‘다섯 오(五)’ 자와 ‘사내 랑(郞)’ 자를 써서 오랑대(五郞臺)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매서운 바닷바람 속에서도 굳건하게 서 있는 검은 바위와 그 너머로 타오르는 붉은 일출을 보고 있노라면, 어떤 외압에도 꺾이지 않았던 옛 선비들의 호연지기와 끈끈한 우정을 고스란히 짐작게 합니다.
🚉 4장. 전설이 깃든 바다, 21세기 ‘오시리아(OSIRIA)’로 완벽하게 부활하다
그렇다면 과거의 전설과 역사를 품은 시랑대와 오랑대는 오늘날 어떻게 우리의 삶 속에 이어지고 있을까요? 그 해답은 바로 동해선 ‘오시리아역’과 롯데월드 어드벤처, 이케아 등이 밀집해 있는 거대한 ‘오시리아 관광단지(OSIRIA Tourist Complex)’에 있습니다.
아마 많은 분들이 ‘오시리아’라는 단어를 처음 접했을 때, 세련된 느낌을 주는 외국어나 중동, 서양의 어느 지명쯤으로 오해하셨을 겁니다. 저 역시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으니까요. 하지만 이 아름다운 이름은 기장의 자랑스러운 자연유산이자 공식 지명인 오랑대의 첫 글자 ‘오(O)’, 시랑대의 첫 글자 ‘시리(Siri)’, 그리고 장소나 부지를 뜻하는 라틴어 접미사 ‘아(~ia)’를 합성하여 부산도시공사가 명명한 매우 독창적이고 ‘부산다운’ 네이밍입니다.
과거 신분 격차를 뛰어넘은 용궁 공주의 로맨스와, 당파를 초월해 우정을 나눈 선비들의 풍류가 머물던 기장의 절경. 그 깊은 스토리가 21세기 부산을 대표하는 글로벌 체류형 해양 복합 관광 단지의 이름으로 완벽하게 재탄생하여 전 세계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는 셈입니다.

동해선 오시리아역
💡 팩트 체크 및 인사이트
용녀의 흔적과 다섯 선비의 실체 시랑대 바위 표면에 존재하는 기묘한 무늬들이 용녀의 발자국이라는 것은 신화적 상상력입니다. 지질학적으로는 해풍과 염분에 의해 바위가 오랜 세월 깎인 ‘타포니(Tafoni)’ 현상입니다. 또한, 오랑대에서 풍류를 즐겼다는 다섯 명의 선비가 구체적으로 누구였는지 명시된 조선 시대의 공식적인 문헌이나 정사 기록은 현재까지 명확하게 교차 검증되지 않은 지역의 구전 설화입니다.
지역 브랜딩(Place Branding)의 탁월한 성공 사례 ‘오시리아’라는 네이밍은 지역의 고유한 역사적 자산(오랑대, 시랑대)을 현대적이고 글로벌한 감각으로 완벽하게 재해석한 장소 브랜딩의 훌륭한 성공 사례입니다. 자칫 난개발 속에 잊히기 쉬운 옛 지명의 파편들을 조합해 부르기 쉽고 세련된 어감을 창조해 냄으로써, 관광객들에게는 이국적인 호기심을 유발하고 지역 주민들에게는 문화적 자긍심을 지켜주었습니다. 훌륭한 스토리텔링이 어떻게 거대한 인프라에 생명력을 불어넣는지 보여주는 교과서적인 모델입니다.
이번 주말, 가족들과 함께 동해선 전철에 몸을 싣고 오시리아역에 내려보시는 건 어떨까요? 화려한 테마파크의 즐거움 너머, 거친 파도 소리와 함께 살아 숨 쉬는 기장 바다의 짙은 묵향과 애틋한 전설을 직접 만나보시길 강력히 추천해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