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설화가 숨 쉬는 동래의 두 얼굴, 사직동과 온천동 이야기

안녕하세요! 부산에서 매일매일 더 나은 내일을 위해 달리는 40대 가장 ‘하시파파’입니다.

제가 거주하는 부산 동래구는 흔히 ‘부산의 뿌리’라고 불릴 만큼 유서 깊은 곳입니다. 그중에서도 사직동과 온천동은 과거와 현재가 묘하게 공존하는 매력적인 동네인데요. 오늘은 가벼운 산책길에 알아두면 더 재미있는, 이 두 동네에 얽힌 흥미로운 역사적 사실과 신비로운 설화들을 학술적 근거를 바탕으로 정리해 보겠습니다.


1970년대 동래전경 (동래구청 홈페이지)

온천동이라는 지명 자체가 ‘따뜻한 샘’을 뜻하듯, 이곳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래된 온천 중 하나인 동래온천의 발상지입니다.

  • 백학(白鶴)의 전설 (설화): 신라 시대부터 전해 내려오는 유명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다리를 절던 학 한 마리가 온천동의 어느 웅덩이에서 며칠간 머물다 다리가 나아 날아가는 것을 본 노파가, 그곳의 물을 만져보니 따뜻하여 자신의 아픈 다리도 고쳤다는 설입니다. 이 ‘백학 전설’은 오늘날 동래온천의 상징이 되었으며, 온천장 곳곳에서 학 모양의 조형물을 만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 왕실의 치유 공간 (조선왕조실록 및 동국여지승람): 설화뿐만 아니라 역사적 기록도 뚜렷합니다. 조선 시대 성종 때 발간된 『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동래온천은 그 온도가 매우 높고 병을 치료하는 효험이 있어 신라 때부터 왕들이 자주 찾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특히 조선 후기 숙종과 영조 시대에는 임금의 피부병이나 병후 회복을 위해 왕실 가족이 동래온천을 방문했다는 기록이 다수 존재합니다. 당시 동래부사가 관할하던 온천 시설은 단순한 목욕탕이 아니라, 국가가 관리하는 중요한 의료 및 외교 공간이었습니다.

동래온천 노천족욕탕 (한국관광공 홈페이지)

오늘날 우리에게 사직동은 ‘롯데 자이언츠의 성지’인 사직야구장으로 더 친숙하지만, ‘사직’이라는 단어에는 매우 깊은 유교적 통치 철학이 담겨 있습니다.

  • 사직단(社稷壇)의 역사적 의미 (동래부읍지): 사직(社稷)의 ‘사(社)’는 토지의 신을, ‘직(稷)’은 오곡의 신을 뜻합니다. 유교 국가인 조선에서 임금은 종묘(조상신)와 함께 사직(토지와 곡식의 신)을 가장 중요하게 모셨습니다. 원래 사직단은 서울에만 있는 것으로 알기 쉽지만, 과거 동래부와 같은 주요 행정 중심지에도 사직단을 설치하여 백성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했습니다.
  • 동래부 사직단의 상징성: 과거 동래부는 일본과의 외교 최전방이자 영남의 요충지였습니다. 따라서 동래부 사직단은 단순한 지역 제단 이상의 위상을 가졌습니다. 현재 사직단은 복원 과정을 거쳐 사직동 쇠미산 자락에 자리하고 있는데, 이는 이 지역이 예로부터 국가의 안녕을 빌던 영험하고 신성한 땅이었음을 증명합니다.

동래구 사직단 (출처: 네이버 지도 거리뷰)

조선 시대에 사직단에서 풍년을 기원하며 제례를 올렸다면, 현대의 사직동은 ‘사직야구장’이라는 거대한 현대식 제단에서 부산 시민의 열정과 응원을 쏟아붓는 공간으로 변모했습니다.

  • 스포츠 메카로서의 위상: 흥미로운 점은 사직동이 가진 ‘제례의 공간’이라는 속성이 현대에 와서 ‘스포츠 축제의 공간’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는 것입니다. 수만 명의 시민이 한목소리로 응원하는 모습은 과거 사직단에서 온 마을 사람이 풍년을 기원하던 공동체 의식과 그 맥락을 같이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1980년대 중반 사직종합운동장이 건립되면서 사직동은 부산을 넘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스포츠와 열정의 상징적인 장소가 되었습니다.

부산에서 매일 오가는 길목이지만, 온천동의 학 전설과 사직동의 사직단 이야기를 깊이 들여다보니 이 땅이 품고 있는 에너지가 새롭게 느껴집니다. 왕의 치유 공간이었던 온천동과 국가의 풍년을 빌던 사직동.

이번 주말에는 단순히 스쳐 지나가는 길이 아니라, 조상들의 지혜와 염원이 담긴 유적지를 천천히 거닐어 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우리 동네가 가진 역사를 아는 만큼, 우리가 발 딛고 서 있는 부산이라는 도시가 더욱 특별하게 보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