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지명 유래] 대연동 ‘못골’과 ‘대연(大淵)’, 아스팔트 아래 숨겨진 거대한 연못의 역사

안녕하세요, 부산 동래구에 거주하며 일상의 가치를 기록하는 ‘하시파파’입니다.

우리가 매일 걷는 도심의 거리에는 수백 년 전 조상들의 삶이 투영된 지형의 기억이 화석처럼 남아 있습니다. 오늘은 부산 남구의 중심지이자, 이제는 번화한 도심이 된 ‘못골’과 그 이름의 한자 표기인 ‘대연(大淵)’에 얽힌 흥미롭고도 묵직한 역사 이야기를 풀어보고자 합니다.


“아스팔트 아래 잠든 물의 기억, 못골과 대연” (上 1972년 , 下 2025년 항공사진)


1. ‘못골’과 ‘대연(大淵)’, 같은 뿌리를 가진 두 이름

우리는 흔히 대연동과 못골을 별개의 이름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지명학적으로 분석해 보면, 이 둘은 ‘커다란 연못이 있는 마을’이라는 하나의 실체를 가리키는 순우리말과 한자어의 관계입니다.

  • 못골: ‘연못(못)’이 있는 ‘골짜기(마을)’라는 뜻의 정겨운 순우리말입니다.
  • 대연(大淵): ‘큰 대(大)’ 자에 ‘못 연(淵)’ 자를 씁니다. 즉, 대연동이라는 이름 자체가 ‘큰 연못이 있는 동네’라는 뜻입니다.

조선시대 문헌인 『동래부지』나 옛 지도를 살펴보면, 이 일대는 황령산(荒嶺山)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모여드는 저지대였습니다. 산세가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어 물이 쉽게 빠져나가지 못하고 고이면서 자연스럽게 거대한 늪지와 연못이 형성되었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이 지형을 보고 ‘못골’이라 불렀고, 이를 행정 구역으로 명문화하면서 ‘대연(大淵)’이라는 한자 이름을 붙인 것입니다.


출처: 네이버 항공지도


2. [역사적 사실] 대연초등학교 자리에 있던 거대 저수지, ‘생천언’

못골에 정말 연못이 있었느냐는 질문에 가장 명확한 증거를 제시하는 장소가 바로 ‘대연초등학교’입니다.

과거 기록에 따르면, 현재의 대연초등학교 부지와 그 인근 남구청 일대는 ‘생천언(生川堰)’이라 불리는 거대한 저수지가 있던 자리였습니다.

  • 용도와 규모: 이 연못은 단순히 자연적으로 고인 물이 아니라, 대연동 들판의 농사를 짓기 위해 물을 가두어 두었던 중요한 수리 시설이었습니다. 못골시장에서 대연사거리에 이르는 넓은 지역이 이 연못의 물을 먹고 자란 곡식들로 가득했던 비옥한 땅이었죠.
  • 사라진 과정: 1960년대 중반, 부산의 도시 개발이 본격화되면서 이 거대한 연못은 매립되기 시작했습니다. 1964년경 토지구획정리사업을 통해 연못은 흙으로 메워졌고, 그 자리에 학교와 관공서, 주택들이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대연초등학교 앞을 지날 때, “이 학교 운동장 아래에는 아주 옛날에 물고기가 살던 커다란 연못이 있었단다”라고 이야기해 주면, 삭막한 도심의 공간이 신비로운 역사의 현장으로 탈바꿈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생천언이 있던 대연초등학교


3. 왜 ‘못골’이라는 이름은 살아남았는가?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연못은 사라지고 물길은 콘크리트로 덮였지만, ‘못골’이라는 지명은 생명력 있게 살아남았습니다.

이는 단순히 관습적인 부름을 넘어, 이 지역의 정체성을 가장 잘 나타내는 상징이기 때문입니다. 1995년 남구청이 현재의 위치(과거 큰 연못 자리)로 이전하고, 지하철 2호선이 개통되면서 ‘못골역’이라는 이름이 공식화된 것은 사라진 자연의 기억을 현대적인 공공 기록으로 복원한 상징적 사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걷는 못골시장 골목의 굽이진 길들은 사실 옛날 연못으로 흘러들던 물길의 흔적을 따라 형성된 경우가 많습니다. 지형은 변해도 그 지형이 만든 길의 골격은 쉽게 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4. 포스팅을 마치며: 발밑에 잠든 역사를 읽는 즐거움

동래구에서 지하철을 타고 넘어와 마주하는 대연동은 이제 고층 빌딩과 아파트가 가득한 현대적인 도시입니다. 하지만 ‘못골’과 ‘대연’이라는 두 이름을 동시에 기억한다면, 우리는 아스팔트 아래 조용히 흐르고 있을 황령산의 맑은 물결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지명은 그 땅이 기억하는 가장 마지막 목소리라고 합니다. 건물이 올라가고 땅의 모양이 바뀌어도, 우리가 그 이름을 올바르게 부르고 그 유래를 기억하는 한, 그 땅의 뿌리는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이번 주말, 대연동 못골시장에 들러 맛있는 음식을 즐기시며, 발밑에 잠들어 있는 거대한 연못 ‘생천언’의 기억을 한번 떠올려 보시는 건 어떨까요? 평범한 도심 산책이 한층 더 깊이 있는 역사 여행으로 변할 것입니다.

이상, 부산의 숨겨진 지명 이야기를 전해드린 하시파파였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