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부산에 거주하며 부산 도심 곳곳의 숨겨진 이야기와 일상을 기록하는 ‘하시파파’입니다.
최근 부산 북구, 그중에서도 ‘만덕동’ 일대가 전국적인 뉴스의 중심에 서고 있습니다. 한동훈 대표를 비롯한 여야의 거물급 정치인들이 보궐선거와 주요 선거 때마다 가장 먼저 달려와 화력을 쏟아붓는 이른바 ‘낙동강 벨트’의 핵심 격전지로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과거 부산의 변두리 산골짜기였던 만덕은 어떻게 오늘날 부산 민심의 풍향계이자 가장 뜨거운 정치적 요충지가 되었을까요? 오늘은 1972년부터 2025년까지의 시대별 항공사진을 통해, 만덕의 지명 유래와 상전벽해를 이룬 50년의 흥미로운 변천사를 지리적 관점에서 분석해 보겠습니다.
1. ‘만덕(萬德)’ 지명의 유래: 만 가지 덕을 품은 땅
선거를 앞두고 폭풍전야인 지금의 모습과는 달리, ‘만덕’이라는 이름의 뿌리는 매우 고즈넉하고 따뜻합니다. 글자 그대로 ‘만(萬) 가지 덕(德)’을 의미하죠.
- 고려 국찰 ‘만덕사(萬德寺)’: 금정산과 백양산 자락이 병풍처럼 감싸고 있는 이곳에는 고려시대 국정의 중심이자 거대한 사찰이었던 ‘만덕사’가 있었습니다. 이 절의 이름을 따서 동네 이름이 유래했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현재 3호선 만덕역 인근에 만덕사지 터가 남아있습니다.)
- 기만덕의 전설: 옛날 이곳에 ‘기만덕’이라는 큰 부자가 살았는데, 흉년이 들 때마다 창고를 열어 빈민들을 구제하며 ‘만 가지 덕’을 베풀었다고 하여 동네 이름이 되었다는 정겨운 야사도 전해집니다.

2. 1970년대: 사방이 막힌 산속 요새, ‘육지 속의 섬’
1970년대 초반의 항공사진을 보면, 이곳이 왜 현재 정치권의 뜨거운 감자인지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철저히 고립되어 있습니다. 북구 구포 쪽으로 나가는 길을 제외하면 금정산과 백양산이 거대한 장벽처럼 둘러싸고 있었죠. 동래구 쪽으로 넘어오려면 험난한 만덕고개를 두 발로 넘어야만 했습니다. 1973년에야 좁은 만덕1터널이 개통되었으니, 그전까지는 맑은 계곡물만 흐르는 전형적인 산골짜기였습니다.

3. 1980~1990년대: ‘레고마을’의 탄생과 외부 인구의 폭발적 유입
정치인들이 만덕에 공을 들이는 진짜 이유는 이 시기의 항공사진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1980년대 부산의 인구 팽창과 함께, 만덕의 넓은 분지에 대대적인 택지 개발이 이루어집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1986년에 조성된 일명 ‘만덕 레고마을’입니다. 무주택 서민들을 위해 54동의 똑같은 단독주택이 바둑판처럼 들어섰고, 이후 거대한 아파트 단지들이 산비탈을 따라 세워졌습니다. 토착민 위주의 조용한 동네가 다양한 계층과 외지인들이 섞여 사는 거대한 ‘베드타운’으로 변모한 것입니다. 특정 이념에 얽매이지 않는 이른바 ‘스윙보터(부동층)’가 밀집한 지역적 특성이 바로 이때 형성되었습니다.

4. 2000~2010년대: 팽창하는 인구, 그리고 교통의 딜레마
2000년대 만덕은 고밀도 주거지로 진화했지만, 동래나 해운대로 넘어가는 길은 만덕터널 하나로 한정되어 있었습니다. 아침저녁으로 주차장을 방불케 하는 극심한 교통 체증이 발생했죠.
정치공학적으로 볼 때, ‘교통 문제 해결’이라는 주민들의 강력하고 공통된 열망은 선거판을 뒤흔드는 가장 큰 무기였습니다. 후보자들은 저마다 터널을 뚫고 지하도로를 만들겠다는 공약을 쏟아냈고, 만덕의 표심은 언제나 실질적인 삶의 질을 개선해 줄 일꾼을 향해 매섭게 움직였습니다.

5. 2025년 현재: 민심의 바로미터, 사통팔달의 허브가 되다
현재의 만덕은 그야말로 천지개벽을 이루었습니다. 2023년 사직동으로 연결되는 제3만덕터널이 뚫리면서 지긋지긋했던 체증이 해소되었고, 해운대 센텀시티를 지하로 10분대에 잇는 ‘만덕-센텀 대심도 도시고속화도로’ 완공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이제 만덕은 고립된 산골이 아니라, 서부산과 동부산의 민심과 물류가 교차하는 가장 강력한 허브가 되었습니다. 중앙 당 대표들이 보궐선거 때마다 만덕 시장을 찾아 국밥을 먹고 지지를 호소하는 것은, 이곳의 표심을 얻는 자가 곧 부산 전체의 민심을 얻는다는 뼈저린 공식 때문입니다.
6. 만덕에 가면 잊지 말아야 할 명소들
선거철의 뜨거운 열기를 뒤로하고, 주말 나들이로 만덕을 찾으신다면 아래 장소들을 꼭 들러보시길 추천합니다.
- 만덕 레고마을: 응답하라 1988의 감성이 살아있는 아기자기한 주택가입니다.
- 석불사(병풍암): 거대한 암벽에 새겨진 마애불상군이 압도적인 신비로운 사찰입니다.
- 만덕 오리마을: 만덕고개 길목 산장에서 맑은 공기와 함께 즐기는 오리불고기는 부산 시민들의 힐링 소울푸드입니다.
과거의 고립을 이겨내고 이제는 부산의 길과 민심을 연결하는 대동맥이 된 만덕. 다가오는 선거철, 뉴스에서 만덕의 이름이 들려올 때 하늘에서 내려다본 이 동네의 치열한 50년 역사를 한 번쯤 떠올려 보시는 건 어떨까요?
이상, 부산에서 땅의 기억을 읽어주는 하시파파였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