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부산의 숨은 매력을 찾는 하시파파입니다.
얼마 전 저희 아이들에게 지도를 보여주며 “사상구랑 사하구는 왜 이름이 비슷할까? 쌍둥이 동네인가?” 라고 물어보았고 아이들은 고개를 갸우뚱했죠. 사실 이 두 동네의 이름에는 엄청난 자연의 신비와 조선 시대의 행정 구역 이야기가 숨어 있습니다.

(출처: 부산광역시 홈페이지)
오늘은 낙동강이 품은 거대한 모래의 역사 속으로 타임슬립을 해보겠습니다.
1. 이름의 뿌리: 모래 사(沙) 자의 비밀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사상(沙上)과 사하(沙下)의 **’사’**는 바로 ‘모래 사(沙)’ 자를 씁니다.
- 지명 유래: 지리학 및 향토사 연구에 따르면, 과거 낙동강 하구 일대는 바다였으나 강 상류에서 떠내려온 엄청난 양의 모래와 퇴적물이 쌓이면서 거대한 삼각주와 모래톱(백사장)이 형성되었습니다.
- 즉, 이 지역은 본래 ‘모래가 끝없이 펼쳐진 동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빌딩과 아파트가 빼곡한 지금의 도심을 생각하면 상상하기 어렵지만, 옛날에는 눈부신 은빛 모래밭과 흔들리는 갈대숲이 끝없이 펼쳐지던 낭만적인 곳이었습니다.

(1972년 사하구 다대포 항공사진)
2. 동래부 사면(沙面)이 갈라지다 (팩트 체크)
그렇다면 왜 상(上)과 하(下)로 나뉘었을까요? 이는 조선 시대의 공식적인 행정 구역 개편 역사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 역사적 사실: 지금은 사상구, 사하구로 완전히 독립되어 있지만, 조선 후기까지 이 일대는 모두 제가 사는 이곳, 동래부(東萊府) 관할의 단일 행정구역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모래톱 일대를 통틀어 ‘사면(沙面)’이라고 불렀습니다.
- 분리 기준: 조선 고종 3년(1866년) 무렵, 늘어나는 인구와 개간된 땅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행정구역을 나누게 됩니다. 이때 낙동강 물줄기가 흘러가는 방향을 기준으로, 강 위쪽의 모래밭 마을을 사상면(沙上面), 강 아래쪽 바다와 맞닿은 마을을 사하면(沙下面)으로 명명한 것이 지금까지 이어져 온 것입니다.


사상구 항공지도 2025년(위) 1972년(아래)
3. 모래가 품은 생명력, 그리고 현재
아이들에게 이 이야기를 해주며 덧붙였습니다. “수천 년 동안 강물이 싣고 온 모래가 차곡차곡 쌓여서 우리가 밟고 있는 튼튼한 땅이 된 거야.”
과거 동래부 사면(沙面)의 모래밭은 오늘날 수많은 공장과 벤처기업이 들어선 부산 경제의 심장(사상)이 되었고, 아름다운 다대포 해수욕장과 일몰을 품은 자연의 보고(사하)가 되었습니다.
🚨 여기서 잠깐! 일부 과거 향토 문헌을 보면 사상과 사하 중간에 ‘사중면(沙中面)’이라는 지명도 한때 존재했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강물의 흐름과 모래의 퇴적에 따라 마을이 생겼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던 역동적인 부산의 옛이야기를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다음에 다대포로 가족 나들이를 가신다면, 발밑의 모래를 보며 아이들에게 꼭 이야기해 주세요. 이 작고 고운 모래가 바로 ‘사하구’ 이름의 진짜 주인공이라고 말입니다.
이상, 동래 아재 하시파파의 재미있는 부산 역사 산책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