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역사 탐방] 기장군 장안읍 ‘월내리’ : 임금님 수라상에 오르던 멸치와 억만금 보부상의 따뜻한 이야기가 숨 쉬는 곳

안녕하세요! 부산에 서식하는 하시파파입니다.

부산의 가장 북쪽 끝자락, 울산과 맞닿은 기장군 장안읍에는 동해안의 거친 파도와 사람 냄새 나는 따뜻한 이야기가 공존하는 마을이 있습니다. 바로 오늘 소개해 드릴 ‘월내리(月內里)’입니다.

부산 인근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분들은 선생님께 “원래 그런데요~” 하고 대답하면 “월내는 기장 위에 있고!” 하는 이야기를 한번 정도는 들어보셨을 겁니다.

달이 뜨는 아름다운 마을이라는 이름처럼, 월내리는 겉보기엔 그저 평화롭고 한적한 어촌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그 골목골목과 포구에는 조선시대부터 이어져 온 상인들의 치열한 삶, 일제강점기의 애환, 그리고 넉넉한 인심이 시리도록 깊게 배어 있습니다. 오늘은 숫자로 계산되는 잣대를 잠시 내려놓고, 월내리가 품고 있는 ‘역사와 문화, 그리고 삶의 이야기’를 찬찬히 들여다보겠습니다.


1975년의 월내 전경(위), 2025년의 월내 전경(아래) (출처: 부산생활지도)


1. 임금님 수라상에 오르던 바다의 맛, ‘월내장(月內場)’의 삶

월내리의 심장 박동은 예나 지금이나 매월 끝자리 2일과 7일에 열리는 ‘월내 5일장’에서 시작됩니다. 조선 말기부터 자연스럽게 형성된 이 장터는 단순한 시장 그 이상이었습니다.

기장 앞바다의 거센 조류를 이겨낸 최고급 미역과 은빛 잔멸치, 그리고 감칠맛 나는 젓갈들이 바로 이곳 월내장으로 모여들었습니다. 그 품질이 어찌나 뛰어났던지 한양의 임금님 수라상에 진상될 정도였죠. 바닷바람에 멸치를 널어 말리는 어부의 아내들, 장날을 핑계 삼아 봇짐을 이고 오랜만에 만나 수다를 떠는 친정엄마와 딸의 모습은 수백 년 전이나 지금이나 다름없는 월내리 삶의 애틋한 풍경입니다.

2. 빈민을 구제한 ‘노블레스 오블리주’, 보부상 배상기(裵常起)

월내리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숨은 영웅이 있습니다. 현재 월내 공원 입구에 나란히 서 있는 공덕비의 주인공, 바로 약 100여 년 전 이 지역 보부상들의 우두머리였던 배상기(裵常起)라는 인물입니다.

그는 고관대작도, 양반도 아니었습니다. 오직 월내 포구에서 멸치잡이와 젓갈 유통으로 억만금의 부를 쌓은 상인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 큰돈을 자신을 위해 쓰지 않았습니다. 흉년이 들면 월내장에 커다란 가마솥을 내걸고 굶주린 백성들을 구휼했고, 가난한 아이들을 위한 장학 사업에 앞장섰습니다. 심지어 그의 재산은 일제강점기 독립 자금으로도 몰래 흘러 들어갔다고 전해집니다. 월내의 거친 바다가 키워낸 진정한 거상의 따뜻한 나눔은 지금까지도 이 마을의 가장 큰 정신적 유산으로 빛나고 있습니다.

3. 영화가 사랑한 골목, 그리고 시대의 변화

세월의 풍파 속에서 월내리의 풍경도 많은 굴곡을 겪었습니다. 일제강점기 시절 물자를 수송하기 위해 마을 바로 뒤로 놓였던 동해남부선 철길은, 세월이 흘러 부산과 울산을 잇는 시민들의 소중한 발(월내역)이 되었습니다. 또한, 과거 곱디고운 모래로 유명했던 월내 바닷가는 고리원전이 들어서면서 아쉽게 해수욕장으로서의 생명력을 잃었고, 그 대신 인근의 임랑해수욕장이 새로운 명소로 바통을 이어받게 되었죠.

하지만 옛 포구의 정취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낡은 방파제와 미로처럼 얽힌 좁은 오솔길 등 짭조름한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은 월내리의 골목은 영화인들의 시선을 사로잡았습니다. 장동건 주연의 영화 ‘친구’부터 원빈, 신하균 주연의 ‘우리 형’에 이르기까지, 굵직한 한국 영화들이 바로 이곳 월내 포구를 배경으로 주인공들의 끈끈하고도 거친 삶을 카메라에 담아냈습니다.


배상기공덕비가 입구석 뒤에 보이는 월내공원 전경


4. 포스팅을 마치며: 낡은 방파제에 기대어 듣는 바다의 이야기

바닷가 마을 특유의 짠내와 사람 냄새가 진동하는 곳. 거창한 개발 호재라는 수식어를 빼고 바라본 기장군 월내리는 그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근현대사 박물관이자, 치열하게 살아온 우리네 부모님들의 자화상입니다.

트렌디한 오션뷰 카페들이 해안선을 채우고 있는 지금도, 어딘가에서는 가마솥을 걸어놓고 이웃을 돕던 보부상의 넉넉한 웃음과, 풍어를 기원하며 파도와 싸우던 사람들의 숨비소리가 월내의 밤바다를 맴돌고 있는 듯합니다.

이번 주말, 화려한 도심을 벗어나 동해선 전철을 타고 조용히 월내역에 내려보시는 건 어떨까요? 낡은 방파제에 기대어 철썩이는 파도 소리를 듣다 보면, 교과서에서는 배울 수 없는 월내리만의 깊고 따뜻한 옛이야기가 귓가에 들려올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