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거리를 하얗게 물들이던 벚꽃이 저물어가고 있습니다. 흩날리는 벚꽃잎을 보며 문득 한 가지 의문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봄이면 전국이 벚꽃으로 뒤덮이는데, 정작 우리나라의 국화(國花)인 무궁화는 왜 일상에서 쉽게 접하기 어려울까?’
물론 꽃을 그 자체로 감상하면 그만이지 식물에 무슨 국수주의적 잣대냐고 반문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한 나라를 상징하는 꽃으로 정해졌다면, 텔레비전 화면이나 사진 속이 아니라 우리가 걷는 거리와 생활 주변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것이 자연스러운 이치일 것입니다.

1. 100일을 줄기차게 피어나는 생명력, 무궁화(無窮花)
무궁화는 아욱과(Malvaceae)에 속하는 낙엽관목으로, 학명은 Hibiscus syriacus이며 영어로는 ‘Rose of Sharon’ 또는 ‘Shrub althaea’로 불립니다. 온대지방에서 흔히 자라며, 가장 큰 식물학적 특징은 7월부터 10월까지 약 100일이라는 긴 시간 동안 매일 새로운 꽃을 피워낸다는 점입니다. 이름 그대로 ‘영원히 피고 또 피어서 지지 않는 꽃(無窮)’이라는 끈질긴 생명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2. 고대부터 이어진 ‘근화향(槿花鄕)’의 자부심
무궁화와 우리 민족의 인연은 매우 깊습니다. 옛 문헌들을 살펴보면 우리 민족은 고조선 단군시대 이전부터 무궁화를 하늘나라의 꽃(환화, 桓花)으로 귀하게 여겼습니다.
- 역사적 기록: 신라의 학자 최치원이 당나라에 보낸 외교 문서에는 신라 스스로를 ‘근화향(槿花鄕, 무궁화 나라)’이라 일컬은 기록이 명확히 남아있습니다.
- 중국의 칭송: 동양 최고(最古)의 지리서인 중국의 『산해경(山海經)』에서도 우리나라를 지칭하여 “군자의 나라가 있는데, 아침에 피고 저녁에 지는 훈화초(薰華草, 무궁화)가 많다”라며 무궁화가 피고 지는 군자의 나라로 칭송했습니다.
3. 민족의 얼이 되다: 애국가와 독립운동
근현대사에 접어들며 무궁화는 단순한 꽃을 넘어 한민족의 얼을 상징하게 되었습니다. 조선 말 개화기를 거치며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이라는 노랫말이 애국가에 삽입되었고, 무궁화는 대중에게 더욱 친숙해졌습니다. 항일 독립군 역시 여러 문서나 부대 문양에 무궁화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며 조국 독립의 굳은 의지를 다졌습니다.
4. 일제의 탄압과 ‘진딧물 프레임’의 진실
하지만 무궁화가 민족의 구심점이 되자 뼈아픈 시련이 찾아왔습니다. 일제 강점기 동안 일제는 대한민국의 상징이라는 이유로 전국 각지의 무궁화를 뽑아버리고 불태우는 이른바 ‘무궁화 소진 정책’을 비일비재하게 자행했습니다.
나아가 무궁화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심기 위해 악의적인 소문도 퍼뜨렸습니다. 흔히 주변에서 무궁화를 가리켜 ‘진딧물이 많고 지저분한 꽃’이나 ‘보기만 해도 눈병이 나는 꽃’이라고 오해하는 배경에는 일제가 만들어낸 왜곡된 프레임이 존재합니다. 이는 ‘조선놈들은 맞아야 일을 한다’는 식의 억지스러운 식민사관과 궤를 같이하는 아픈 역사의 잔재입니다. 이를 떠올리면 짙은 답답함과 아련함이 교차합니다.
5. 현대 과학으로 피어난 개량 무궁화, 일상으로의 초대
과거 재래종 무궁화에 진딧물이 끼는 현상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가장 중요한 것은 현대의 식물 및 산림학적 연구 결과입니다.
- 국립산림과학원의 연구 및 보급: 산림청 산하 국립산림과학원 등 공식 연구기관의 발표에 따르면, 지속적인 품종 육성 연구를 통해 현재는 병충해와 진딧물에 매우 강하고 도시 환경에서도 잘 자라는 우수한 개량 무궁화 품종(배달계, 단심계 등)이 다수 개발되었습니다. 즉, 관리상의 문제와 과거의 오해일 뿐, 지금은 얼마든지 깨끗하고 아름다운 무궁화를 가꿀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6. 벚꽃 축제만큼 아름다운 무궁화 축제를 꿈꾸며
진딧물 없는 깨끗한 개량 무궁화가 이미 우리 곁에 준비되어 있습니다. 벚꽃이 피는 봄날이 지나고 여름이 찾아올 때, 벚꽃처럼 우리의 무궁화를 거리 곳곳에서 흔히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전국의 수많은 지자체에서 벚꽃 축제를 여는 것처럼, 100일간 꺾이지 않고 피어나는 무궁화의 끈기를 감상하고 즐길 수 있는 ‘무궁화 축제’가 곳곳에서 활기차게 열리기를 희망합니다. 그것이 진정으로 우리의 꽃을 사랑하고 일상 속에서 지켜내는 첫걸음일 것입니다.